어느 날 TV에서 40대
내외의 가정 주부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았다. “언제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하는 질문에 각양각색의 대답이 그럴 듯 했다. 홀연히 늙음을 느낀다고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늙는다는 것은 다 싫은
모양이다. 성경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하였다. 좌우간 칠십이나 팔십으로 인생을 마친다 할지라도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랄하게 생기 찬 모습으로 살다가 갈 수는 없을까? 그날 인터뷰에 응한 주부들은
사십 대에 이미 늙음을 느끼고 허전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저들은 젊음을 유지해 보려고 화장을 짙게
하거나 호르몬 제나 보약을 복용하는 등 애를 써도 소용이 없더라고 탄식하고 있었다. 옛 시조에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 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막지 못 할 늙음을 슬퍼했으니
고금이 일반이다. 그렇다면 과연 늙지 않는 비결은 없단 말인가? 논어에, 섭공이 공자님의 제자 자로 에게 “공자님은 어떤 분이신가?”고 물었더니 자로가 머뭇거리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소문을 듣고 공자님이 말씀하시었다. “자네가 왜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이렇게 말할 것이지 –그의 사람됨은 학문에 몰두하면 발분하여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것으로 낙을 삼아 걱정 근심을 다 잊으며 늙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로
보건대 참으로 공자님은 일생 늙음을 모르고 살았다 할 수 있다. 일본 북해도 삿포로 맥주 회사 창립 사장 마고시 우마배이는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측근이 이제 그만 은퇴하고
여생을 편히 사시라 권고하자 “오십 육십은 코흘리개, 사나이
한창은 갓 팔십!”이라 외치며 구십까지 집무하다 세상을 하직하였다 한다. 역사상 노익장(老益壯)의 인물들이 수
없지만 그 중 몇 분만을 여기에 소개해 보려 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38세에 아프리카 가봉 의료 사업을 시작하여 90세로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는 77세였다. 그러나 그 후 13년을
더욱 정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윈스턴 처칠 공산권을 철의 장막이란 말로 경고한 유명한 연설을 한 것이 71세 때이고, 전직 수상이던 그는 그 해에 영국 해군으로부터 명예
제독으로 임명되었다. 76세에는 다시 수상의 자리에 올랐고, 2년
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TV 인기 프로인
‘초원의 집’의 둘째 딸 로라 잉걸스의 모델이 된 여류 동화
작가다. 65세가 될 때까지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못했었다. 65세에
처녀작을 냈고 어린이를 위한 그의 수 많은 걸작은 주로 70세 이후에 쓰여진 것이다. 90세까지 9권의 시리즈를 썼고,
그의 책은 TV극 ‘초원의 집’의 소재로 미국 어린이의 고전이 됐다. 더글라스 맥아더 주한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 그가 70세 때였다. 그 후 그가 군복무를 마치면서
미국 의회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 질 뿐이다(The old
soldier never dies but only fades away).”라고 기염을 토한 사실들을 바라 볼 때 끝까지 자기 할 일에
전력하며 몰두하는 사람은 늙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는 늙을 여가가 없다. 그 위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영원히 젊음이 넘친다. 내가 아는 권사님 한 분은 80 노령임에도 기골이 정정하고 항상 할렐루야!로 웃음을 잃지 아니하신다. 단신 월남하여 의지 할 곳이 없으니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교회를 내 집 삼아 떠날 날이 거의 없다. 어려운 생활을 하시면서도 궁색한 빛이 없고
항상 “감사하다. 기쁘다.”하시며
그 웃는 얼굴에는 광채마저 비친다. “올 겨울에는 밥도 얼고 김치도 얼었지만 기도하고 먹으니 배탈도
안 나더라.”하며 소녀마냥 깔깔 웃으시는 권사님의 얼굴에는 그림자 조차도 안 비친다. 왜 그럴까?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 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였다. 옛 글에 창천은 불노(蒼天不老)라 하였고 하나님의
도는 건전하다(天道健矣) 하였다. 성경에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늙지 아니하시고 쇠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앙망하는 자는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여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이라(시편
92:12~14)하였다. 중용(中庸)에 말하기를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하였다. 우리가 불로초(不老草)를 캐려고 삼신산(三神山)까지 갈 궁리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늙지 않으려면, 첫째, 자기 일에 열중하는, 즉
죽기까지 자신에 알맞은 일을 찾아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 사람이란 늙어가면 기력이 쇠하고 정열이 식어 고목같이 메말라지는
법이다. 그러나 예수를 열심히 믿고 그 속에 성령이 불타면 사시상춘(四詩常春) 봄바람이 불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을 맺을
뿐 아니라 가슴에는 항상 노익장(老益壯)으로 젊음의 정열이 불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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